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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31稿 忘れられない一通のメールと、次の扉を開く音

地軸の傾きや、太陽のフレアまで想起させるほど、何か不穏な風が、毎日のように吹いている気がする。 6月の札幌である。

私は今、自分が間違いなく転機を迎えていることを感じながら、毎日、出勤している。

執筆計画は、大幅に頓挫した。思うように進まないことも増えた。
生活のこと、仕事のこと、これからのこと。
いろんなことを考えてしまう。 けれど、やはり思うのだ。

もう、自分から動く、時期なのではないか。

私は日本に住んでいる。 そして、日本語で、Reneという作家を、世に出そうとしている。

札幌の中心部、狸小路あたりを歩いていると、私の同胞である韓国の若い人たちをよく見かける。
若い女性たちのグループ。私と同じくらいの年代の人たち。
もう少し上の世代の女性たち。家族連れ。
彼らが、札幌の街を楽しそうに歩いている姿を見ると、何とも言えない気持ちになる。

一方で、今の韓国も、重大な局面を迎えているように感じる。
日本で日々を生きている私は、それをただ、漠として見ているしかない。
それでも、肌感覚としても、街の景色としても、何かが大きく変わっていく気配を、感じざるを得ない。

そんな中で、ふと、釜山で過ごした14年ほどの日々を、本当に久しぶりに思い出した。

日本と韓国の会社の仲立ちをしながら、通訳業務や、日本企業の現地代行のような、仕事をしていた頃のことだ。

通訳という仕事は、表に出る時間だけを見れば、たった一日、二日で終わることもある。
しかし、その準備には、時にその何倍もの時間が必要だった。
特に技術関連の専門通訳は、一週間ずっとその分野の勉強だけをしていたこともあった。
だからといって、私が精通するわけではない。その仕事が終われば、次はまた別の分野の通訳が来る。また一から、新しい分野に向き合う。
その繰り返しだった。

当時の私には、それが大きな負担だった。いつも自分の足りなさを、突きつけられているようだった。 けれど今振り返れば、そのたびに多くの人に会い、助けられながら、私は少しずつ成長していったのだと思う。

その中で、今も、忘れられない方がいる。

韓国に来て間もない頃、技術分野で有名な日本企業の設計部の方々を案内する仕事を受けた。
チームリーダーのYさんが、部下を連れて観光に来たのである。
日程を終えた夜、マッコリを飲みながら、業務通訳の話になり、部下の方が「この方に、通訳をお願いしてみたら。」と、Yさんに提案した。
専門分野は難しいと断る私に、彼らは「あなたの日本語なら、できるのではないか。」と言ってくださった。

それから少しして、Yさんから急ぎの資料が送られてきた。
韓国から買い入れた機械の欠陥について、原因を分析し追及する、
非常に、特殊な案件だった。

クレーム関連の通訳は難しい。言葉の正確さだけではなく、空気の読み方、相手の立場、感情の温度、交渉の流れ、そのすべてに神経を使わなければならない。
しかも当時の私は初心者で、さらに悪いことに、
ひどい、喉風邪をひいていた。

韓国側の会社に、日本語を話せる方がいて、最悪の事態は免れた。
しかし、私の気持ちは、惨憺たるものだった。

日本から来られた役職の高い、四人の方々を前に、自分の力不足を痛感した。 もっとできたはずだ。もっと準備できたはずだ。
もっと役に立てたはずだ。 そんな悔恨ばかりが、残った。

数日後、Yさんから、一通のメールが届いた。

そこには、急な日程と、不十分な資料提供への謝罪、そして私が大変だったのではないかという、気遣いが書かれていた。そして、こう添えられていた。

「あなたの日本語の力なら、十分に通訳の仕事ができる。これからも頑張ってください。」

私はそのメールを読んで、感情がこみ上げ、泣いた。 あの時の涙を、今でも覚えている。

それは、悔しさだけではなかった。安堵でもあり、感謝でもあり、自分という人間を、もう一度立て直すための涙だった。 あのメールが、私の通訳の歴史の始まりになった。努力しようと思えた、原動力になった。

人は、一人では生きていけない。同じように、仕事も一人でしているわけではない。 自分一人の力でやってきたような、顔をしてはならない。
誰かが、声をかけてくれた。誰かが機会をくれた。誰かが失敗の後に、もう一度立ち上がる言葉をくれた。 そのやりとりの中で、人は仕事を覚え、生き方を覚えていくのだと思う。

私は今、次の段階に進む番なのだと思う。

これまで出会った人たちに感謝しながら。 かつて私を信じてくれた人たちの言葉を、もう一度胸に置きながら。

Reneという作家を、日本語で世に出していく。 その仕事もまた、きっと一人ではできない。 けれど、あの時と同じように、最初は不完全でもいいのだと思う。恥ずかしくても、足りなくても、震えていてもいい。そこから本当に、勉強すればいい。

6月の札幌には、今日も不穏な風が吹いている。 けれど、その風の中に、どこか次の扉が開く音も、混じっている気がする。

私はもう一度、自分から動こうと思う。 感謝を忘れずに。そして、次の段階へ進むために。


제31장 잊을 수 없는 한 통의 메일과, 다음 문을 여는 소리

지축의 기울기와 태양의 플레어까지 떠올릴 정도로, 뭔가 불안한 바람이 매일 부는 듯하다.

6월의 삿포로다.

나는 지금 내가 확실히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매일 출근을 하고 있다.

집필 계획은 크게 좌절했다. 생각대로 나아가지 않는 일도 늘었다.

생활, 일, 그리고 미래의 것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제 스스로 움직일 시기가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일본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일본어로 Rene라는 작가를 세상에 내보내려 하고 있다.

삿포로 중심가인 타누키코지 주위를 걷다보면, 내 동포인 한국의 젊은이들을 자주 보게 된다.

젊은 여자들의 그룹.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 조금 더 연령대가 높은 여성들. 가족 동반 일행들.

그들이 삿포로 거리를 즐겁게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한편, 지금의 한국도 중대한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일본에서 매일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는 나는, 그것을 그저 막연히 바라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부 감각으로도, 거리 풍경에서도, 뭔가가 크게 변하고 있다는 기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와중에, 문득, 부산에서 보낸 약 14년 동안의 일들이 정말 오랜만에 생각이 났다.

일본과 한국 기업을 연결해 주면서 통역 업무와 일본 기업의 현지 대행 같은 일을 하던 시절이었다.

통역이라는 일은, 겉으로 드러나는 시간만 보면, 단 하루 이틀 만에 끝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준비에는 때때로 그 몇 배에 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기술 관련 전문 통역은 일주일 내내 그 분야 공부에만 매달려야 할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완전히 정통한 것도 아니다. 그 일이 끝나면 다음에는 또 다른 분야의 통역이 들어 온다.

다시 처음부터 새로운 분야를 마주해야 한다. 그것의 반복이었다.

그때의 나에겐 그것이 큰 부담이었다. 항상 내 부족함을 직면하게 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을 받으며 내가 조금씩 성장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 중에서도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한국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기술 분야로 유명한 일본 기업의 설계부 직원들을 안내하는 일을 맡았다.

팀 리더인 Y씨가 부하를 데리고 관광을 하러 왔다.

일정을 마치고 밤에 막걸리를 마시며 업무 통역 이야기가 나왔고, 부하 직원이 “이 분에게 통역을 부탁해 보면 어떨까요?”라고 Y씨에게 제안했다.

전문 분야는 어렵다고 거절한 나에게, 그들은 “당신의 일본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해 주었다.

그 후 얼마 지나서 Y씨에게서 급한 자료가 메일로 도착했다.

한국에서 구매한 기계의 결함에 대해 원인을 분석하고 추궁하는, 매우 특수한 안건이었다.

클레임 관련 통역은 어렵다. 말의 정확성뿐만 아니라 분위기를 읽는 방법, 상대의 입장, 감정의 온도, 협상의 흐름 등 모든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게다가 그때 나는 초보자였고, 더 심각한건 심한 목감기에 걸려있었다.

한국 측 회사에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참담했다.

일본에서 온 직위가 높은 네 분 앞에서, 내 실력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꼈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더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더 도움이 되었을 텐데. 그런 후회만이 남았다.

며칠 뒤, Y씨로 부터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메일에는 갑작스러운 일정과 부족한 자료 제공에 대한 사과, 그리고 내가 힘들었지 않았을까 하는 배려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다음의 글이 첨부되었다

“당신의 일본어 실력이라면 충분히 통역 일을 할 수 있다. 앞으로도 힘내 주세요.”

그 메일을 읽고 감정이 북받쳐 울고 말았다. 그때의 눈물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억울함만이 아니었다. 안도감이자 감사함이었으며, 자신이라는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눈물이었다.

그 메일이 나의 통역 역사의 시작이 되었다. 노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원동력이 되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일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혼자 힘으로 해온 듯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안된다.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었다. 누군가가 기회를 주었다. 누군가가 실패 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말을 건네주었다.

그 대화 속에서 사람은 일을 배우고, 삶의 방식을 익혀 나간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다음 단계로 나아갈 차례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한때 나를 믿어줬던 사람들의 말을 다시 한 번 가슴에 품으며.

Rene라는 작가를 일본어로 세상에 내보낸다. 그 일도 역시 혼자서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처음엔 불완전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부끄럽거나 부족하거나 떨고 있어도 괜찮다.

거기에서 부터 정말로 배우면 된다.


6월의 삿포로에는 오늘도 불안한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그 바람 속 어딘가 다음 문이 열리는 소리도 섞여 있는 듯하다.

나는 다시 한 번 스스로 움직이려고 한다. 감사를 잊지 말자. 그리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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